시애틀에 살면서 종종 이 곳의 지진 가능성에 대해 의문을 가졌습니다. 분명 학교에서 배운 환태평양 지진대에 속하긴 하는데, 이 곳에서 6년 가량 살아봤지만 지진을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고, 평소 생활하면서도 지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지진이 한 번 크게 있었는데 워싱턴 대학의 컴퓨터학과 건물이 크게 손상을 입어 급히 여기저기서 지원을 받아 새 건물을 세웠다는 이야기를 들은 게 지진에 관련된 제가 기억하는 유일한 이야기입니다. 이 때 마이크로소프트의 폴 알렌과 빌 게이츠에게 많은 기부를 받았는데, 폴 알렌이 가장 많은 기부를 하였기에 현재 컴퓨터 학과 건물의 정식 명칭이 “The Paul G. Allen Center for Computer Science & Engineering”로 되었다고 합니다.

사실 시애틀, 더 넓게 보아 서북미 지역에는 큰 지질 활동이 있었다는 기록이 많지 않습니다. 백인 이주민들이 19세기 중반 정착하기 이전에 거주했던 원주민들은 문자 기록을 하지 않았기에 지진에 대한 설화 정도만 남아 있는 정도이며, 그 이후는 미 역사상 가장 큰 재산피해를 준 1980년의 세인트헬렌스 산의 분화와 올림피아 근방에서 일어난 2001년의 진도 6.8 니스퀄리 지진 정도만이 손에 꼽힙니다. 서북미 지역은 약 1600년 전 까지만 해도 빙하가 덮여 있었던 탓에 과거 지진의 흔적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았고, 백인 이주민 정착 후 오랫동안 큰 지진이 없었기에 지진 안전대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1977년에 워싱턴 주 샛솝(Satsop)에 핵발전소가 건설되기도 하였습니다. 다행히 예산 문제 때문에 중단 되었지만요.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겨우 대지진의 흔적이 학계에 발표되기 시작하였고, 1990년대에 알카이 해변(Alki Beach)에서 시작하여 현재 시애틀 다운타운 남쪽, 워싱턴 호수를 지나 사마미시 호수(Lake Sammamish)를 지나는 시애틀 단층대의 존재가 발견되면서 비로소 서북미 지역의 지진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 다음 지진은 과연 언제 일어나며 얼마나 큰 규모로 일어날 것일까요. 해저 지층 탐사를 통해 최근 만여년 동안 서북미 지역에 진도 8 이상의 지진이 열 아홉번이 있었다는 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이 자료와 가장 최근에 일어난 대지진이 1700년이었다는 것을 고려해, 향후 50여년 사이 이러한 대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은 약 10%에서 15%정도 되지 않을까 추측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이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수천년 수만년 전에 일어났던 지질 활동의 발자취를 더듬어가며 미래를 예측하는 지질학은 아직도 나아가야 할 길이 먼 분야입니다.

지진에 대한 정확한 예측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지진에 대한 대책입니다. 시애틀 단층대가 밝혀지며 이 곳이 얼마나 취약한 곳인지 알게 된 이후 시애틀은 지진에 대해 전방위적인 점검을 시작합니다. 시애틀 해안가를 가로지르는 알라스칸 웨이 고가도로(Alaskan Way Viaduct)는 니스퀄리 지진 이후 취약점이 발견되어 지하 터널로 대체하는 공사가 진행중이며, 조지 워싱턴 메모리얼 교각(George Washington Memorial Bridge) 등은 2012년에 지진에 대비한 보수 공사를 마쳤습니다. 시애틀은 새로 지어지는 건축물에 내진 설계 규정을 강화하고, 오래된 건축물에는 내진검사와 보강공사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확실히 이곳 주민들은 일본이나 캘리포니아 주민들에 비해 지진에 대해 무감각한 건 사실입니다. 큰 지진도 없었고, 평상시에 미진도 거의 없으니까요. 앞으로도 지진이 없길, 그리고 지진이 나더라도 큰 피해가 없길 바랄 뿐입니다. 만일 이곳에 집을 장만할 계획이 있으시다면 위치가 시애틀 단층대나 해일 위험 지역에서 떨어진 곳인지 확인을 해 보시고, 지진 보험에 가입해 놓으시는 걸 추천합니다.

더 자세한 이야기를 읽고 싶으시다면 “Full-Rip 9.0: The Next Big Earthquake in the Pacific Northwest”을 추천드립니다. 2013년에 발간된 책인데, 시애틀을 포함한 서북미 지역의 지진 연구를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일본의 쯔나미 기록과 바닷 속에 잠겨있는 유령 숲의 나이테 분석을 통해 발견한 1700년 1월 26일 밤에 일어난 진도 9.0의 대지진, 1800년대 이주민들이 기록한 인디언들의 지진에 관련된 구전설화, 20세기 중반 이후 퍼지기 시작한 판 구조론, 정밀 레이져 기술의 발달이 밝혀낸 시애틀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시애틀 단층, 워싱턴 호수 깊이 30피트에 잠긴 화석화된 천년묵은 고목들을 통해 밝혀낸 대지진의 역사 등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책에 담긴 내용은 제가 설명한 것 보다 더 우울한 전망을 보여주고 있어 거주민의 입장에서는 오싹한 내용도 없지 않다는 경고를 드리고 싶네요.

책에서 인상 깊었던 구절을 하나 소개하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1852년에 워싱턴 해안에 정착한 스완은 빌리 발치라는 마카 인디안 친구에게서 쓰나미에 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듣습니다. “오래 전, 하지만 아주 동떨어지지 않은 시기에, 태평양의 바닷물은 나흘간 후퇴하여 니아 만(灣)을 완전히 말려버리고 말았다. 이후 나흘 동안 한 번의 파도도 없이 밀려든 바닷물은 산봉우리를 제외한 모든 것을 삼켜버리고 말았다. 많은 카누가 나무에서 떨어져 부서지고, 많은 사람이 죽었다.”

“A long time ago, but not at a very remote period, the Pacific Ocean receded for four days, leaving Neah Bay dry. The water surged back, rising for four days without any waves or breakers until everything was submerged but the mountaintops. Many canoes came down in the trees and were destroyed, and numerous lives were lost.”